스타일리시한 그림으로 표현하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
엿보는 취미로 살아가는 한 오덕의 일상
영신은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떴을 때에야 제 몸이 의료실로 떠메어 와서 누운 것을 깨달았다.
숙직하는 교원에게 응급치료를 받은 후 교의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영신은 몽유병 환자와 같이 눈을 멀거니 뜨고 누워서, 수술실처럼 흰 휘장을 친 유리창이 아침 햇발에 뿌옇게 물이 드는 것을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제야 맹장염 수술한 자리가 뜨끔거리는 것을 깨닫고,
“아이고! 인전…….”
하고 절망적인 한숨을 내뿜었다.
백발이 성성한 교의는 실내에까지 단장을 짚고 들어와서 영신을 자세히 진찰해 본 뒤에,
“몸 전체가 대단히 쇠약헌데, 각기병은 짧은 시일에 쉽사리 치료를 헐 수 없는 병이니, 고향으로 돌아가서 편안히 쉬며 치료를 허는 게 좋겠소. 복부의 수술도 완전히 하지 못해서 재발될 증조가 보이니 특별히 주의를 허지 않으면 큰일나오.”
하고는 비타민 B가 부족해서 나는 병이니 현미나 보리밥을 먹으라는 둥, 심장이 약하니 절대로 과격한 운동을 하지 말라는 둥 주의를 시키고 나갔다.
경험 있는 의사의 권고까지 받고, 영신은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고명한 의사가 들이 쌓였고, 의료기관이 아무리 발달된 곳인들, 고향으로 돌아갈 노자 몇십 원이 없는 영신에게 있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가나 오나 남의 신세만 지는 몸이 더구나 인정 풍속이 다른 수천 리 타향에서 그네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는 친절을 받느니보다는, 하루바삐 정든 고장으로 돌아가서 피골이 상접해 가는 몸을 편안히 눕히고 싶었다. 편안히 눕히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해 만에 어머니를 곁에 모셔 오고, 청석골의 산천을 대하고, 꿈에도 밟히는 어린 학생들의 손을 잡고 뺨을 부벼 보면, 정신상으로나마 얼마나 큰 위로를 받을지 몰랐다. 그는 마침내,
‘가자, 죽드래도 내 고향에 가 묻히자!’
하고 비장한 결심을 하였다. 서울 연합회의 백씨에게 급한 사정을 하고 노비를 보내 달라고 편지를 써서 항공 우편으로 부쳤다. 돈 말을 하기는 죽기보다 싫지만, 남에게 구구한 사정을 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한 달 학비를 다가 쓰는 셈만 친 것이다.
노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영신의 고민은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의 결혼 문제는 어떡헐까.’